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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9일 / 신유의 복음 운영자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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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8:14-17절 개역개정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사야 선지자는 534절에서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신의 질병도 고치시는 치료자가 되신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8:17).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질고와 질병, 죽음의 형벌을 담당하신 분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을 하신 데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1. 신유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나타내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 즉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들을 보여야 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이미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려고 무덤으로 가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11:15).

 

2. 신유는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동정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6:34). ‘불쌍히‘passion’입니다. ‘함께라는 의미와 고난이라는 의미가 합쳐져 된 말입니다. 즉 고난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긍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3. 신유는 병든 자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많은 병자를 치료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내 병을 고칠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고침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했습니다. ‘신유는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 당장 병은 없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복음입니다. 우리가 경계할 것은 예수님을 만병의 치유자로 지나치게 인식하는 것과 반대로 예수를 질병과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거나 복음의 핵심을 흐리게 하고, 성경을 잘못 풀어서 숱한 영혼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병의 대 의사로 선전하는 극단론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 아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긍휼히 여기사 신유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바울,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등 앞선 사람들 모두 신유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도 그 완성, 궁극적인 구원은 재림과 부활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이 사죄처럼 반드시 병의 치유를 수반해야 한다면 교회 안에서는 아픈 자가 하나도 없어야 마땅합니다. 죽음도 면제받아야 맞습니다. 이런 극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신유는 회개와 믿음과 기도로 주어집니다(5:15). 하나님은 구하는 이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신유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의사의 의술로 고침을 받거나 기도를 통해 고침을 받거나 믿음의 태도는 그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고쳐주심, 가시로 남겨 놓으심, 부르심. 어느 것이 주의 선하신 뜻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고쳐주실 것을 기대하고,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고쳐주신다면 그것은 가시인데, 가시는 징계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육체의 약함을 통해서 영혼의 허약을 보호하려는 배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셔서 우리를 고통 중에 두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지인이 아플 때... ‘척 우드의 말을 인용합니다. “병에 걸리면 나는 하나님이 치료해 주실 때까지 기도할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 병이 그의 뜻임을 보여주시고, 병에 대해 평화로운 마음을 주실 때까지 기도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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